이런 꿈을 꾸었다. 문을 잠그고 잠궈도 자고 일어나면 항상 풀러져 있는 문고리들. 방 한가운데 커다랗게 구멍이 난 나의 2층 집.
영화로 만들 수 있을만큼 같은 꿈을 5년 이상 꾸고 있는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매번 바뀌는데 에피소드는 비슷하다. 약속을 하면 약속이 깨진다.
프로이트를 읽어도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무의식이 나를 5년째 따라다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소름 끼친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니 엄마가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진짜 너를 좋아한다고 느낄 때는 오늘처럼 몇 번씩이나 즐겁게 해줄 때, 또는 몇 번씩이나 슬프게 해줄 때 문자 하나로도 내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할 때.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느껴야 하는데 더 가지려고 할 때. 다른 사람 눈치 보일 때. 사랑에 대해서, 너에 대해서 내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이 느껴질 때. 그러니까 지금! 만사 제쳐두고 당신이랑만 있고 싶습니다만... 미뤄둔 과제의 압박이.
친구가 힘들다고 전화해주면 나한테 전화해줘서 고맙다고 해야하는데 내가 너무 즐거운거지. 그래서 그 사람을 용서해라, 잘 해줘라 따위의 좋은 말 밖에 안 나온다. 같이 욕도 해줄 수 있는 친구이고 싶은데.
아 또 잠 안와.
진짜 외로운 건 내가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라 내게 사랑에 빠진 사람을 지켜보는 것. 내게 사랑에 빠진 사람 때문에 내가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사람을 외면해야 한다는 것. 사랑받는 것도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덕분에 저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핏기없는 입술과 심장만 얻을 뿐이죠. 괜찮아요. 어차피 저는 온전한 사랑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아니까.
잘 있니? 밥은 잘 먹고 다니고? 묻고 싶은 건 많은데 막상 혀끝에서 맴돌며 발화되지 못하는 나의, 그러니까 나의, 나의... 그러니까 그게 뭐더라? 너와의 일들은 정말 영원영원 전의 꿈 같다. 그 날의 바람과 침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니까.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을 만나 행복하다. 얼굴만 봐도 따뜻해지는 것 같다. 너와의 일은 거의 다 잊은 것 같다. 그러니까 이제, 그게 그러니까... 나 혼란스럽게 하지 말아 줄래.
내일 김남건씨 영화 보러가야 하는데 잠이 안온다. 괜히 화도 나면서 말이다. 그는 어떻게 그런 재능이 졸졸 흘러 넘치는 건가. 무용하다가 연극하더니 영화까지해서 어떻게 단박에 상까지 거머쥐는 건가. 언제나 그랬듯 나는 세상에서 무용하는 사람들이 가장 멋지고 부럽다. 말이 흐르지 않는 무대에서 몸짓으로 언어를 만드는 능력은 언제나 난이도 백만개. 김남건씨의 춤을 처음 보았던 자유소극장의 공기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의 강렬한 절규가 아직도 눈가와 귓가에. 어쩌다 영화를 공부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면, 진짜로 어쩌다 말고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예전의 선생님들도 못 뵙는거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게 영화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얼마 전에, 극작수업을 받았던 여교수님이 신작 희곡을 발표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대일 수업에서 나와 함께 쓰던 작품이었는데, 이제서야 완성 되었다고 하니 나로서도 기뻤다. 그때 내가 쓰던 희곡은 지금의 <웨딩부케>인데, 그 버전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하긴 희곡에서 시나리오로 바뀌었으니. 그리고 그 여교수님한테 혼도 많이 났었다. 글을 쓰는 건 내게, 발가 벗는 것과 같기 때문에 진짜 죽고 싶을만큼의 수치심도 느꼈었다. 폼으로 글을 쓰는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러지를 못했다. 그러고 6개월 후에 시나리오 초고로 <웨딩부케>가 나왔다. 맘 같아선 선생님 희곡 발표하시는 날에 프린트해서 꽃다발 대신 안겨드리고도 싶지만 그러지를 못한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모욕감 덕분에 지금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다시 무대로 돌아가기를 빈다. 그래도 가장 가슴이 뛰는 건 무대. 영화가 유일하게 따라갈 수 없는 무대, 입장하면서부터 관객을 압도하는 그 긴장감. 막이 오르기 전의 캄캄한 무대 뒤. 세포 하나하나가 뛰는 쾌감, 나는 그런 기분을 안고 영화를 한다.
이제 결혼하시고, 팀장 승진하시고, 전세집 구하시고, 유학 떠나시고, 적금 부으시고, 쇼핑몰 오픈하시고, 신부수업 받으시고, 다들 잘 나가고 계신데 저는 알바 면접도 떨어져 빌빌대고 계셔요. 제 친구들만 잘 나가는 겁니까. 저는 왜 하필 영화를 하고 싶은 걸까요.
flamingo, flamenco 가끔 넋을 잃게 만들어 주는 사물들이 있다. 너무 아름다워서 가까이 다가가 만지고 싶다가도 눈 깜빡 하는 새에 흩어져 버리는, 그 이상 나의 것이 될 수 없어 뒤돌아서고 마는, 그런 아름다운 사물들에게 사랑에 빠져 있는 나. 조심해요, 언젠가 사라질거예요! 잘 알지만 너무 세심해서 가지고 싶은걸요. 하여간 동물원은 어린이가 감당해낼 수 없을만큼의 환상을 너무 과하게 보여줘서 탈.
thank you soooooooooooo much for 개노믜시키
아무래도 나, 너한테 반한 것 같아 아마 사랑에 빠질지도 니가 너무 보석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왜, 나는 빛나지 않는거지 그래서 니가 죽을 듯이 미워 우린 아마도 평생, 스치지 않겠지.
섬광은 내 마음에 새겨진 채 아마도 지옥에서 평생, 한철을 보내겠지 그래도 나는 충분히 매력적이길 바래.
햄릿은 기본적으로 10대 소년이에요.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 손을 뻗을 용기가 없죠. 그래서 미쳐버려서 오필리어 생각하며 자위하고 지루하게 끝나는 거죠. 누가 좀 죽여줘야겠어요. - 그게 옳은지는 모르겠구나. 햄릿엔 자위하는 게 안 나와서. 아뇨, 있어요. 엄청 많이. 독백이라고 부를 뿐이지만.
SKINS
진짜 미칠 것만 같고 불편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금지된 것들, 아름다운 것들, 수많은 욕망들. 여태까지 절제하려고 노력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을 풀어헤치는 정도로. 그런데 그게 과연 내 까다로운 검열 안에서 마음대로 될까. 그리고 이걸 만들고 나면 어깨의 짐이 좀 덜해질까. 그래서 머리를 잘랐던, 바지를 입었던, 칼로 얼굴을 그었던, 모든 여성스러운 것들을 증오했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언제나 지금을 뛰어 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오늘 새벽, 분명히 자고 있었는데도 자꾸만 생각이 났던 문장은 "죽지마, 나도 따라 아플거야" 처음에는 연인의 생각이 났고, 그 다음엔 죽은 친구의 생각이 나서, 나도 따라 아플건가 고민했으나, 알고보니 강화정선생님의 작품이었다. 그 충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연극을 공부했지만 내게 가장 충격을 준 작품은 피나바우쉬나 강화정선생님처럼, 혹은 최근의 김설진씨까지 언제나 무용이었다. 나는 말이 극도로 많아서 독백만 한바닥이거나, 혹은 아예 침묵해서 말을 아예 않는, 이 두 가지가 다 좋다. 연극은 말이 많고, 무용은 말이 없다. 영화는 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는 무대가 없다. 앞으로 어떤 영화적인 언어를 가지게 될까, 그것만 생각하면 설레어서 잠을 설친다. (숙제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리고 딱 서른살에 현대무용을 시작하겠다. 아싸리.
1. 그는 그 모든게 "작품욕심" 하나면 차차 이루어질 거라 했다. 나는 그거 너무 가식적인 거 아니냐 재차 물었다.
2. 생각해보니 가장 두려운 건 고독에 빠지는 일이다. 그래도 다른 것보다 그게 훨씬 나쁘지 않다고 느껴지는 건.
3. 두렵다. 엄마가 될까봐. 덕분에 나는 까다롭고, 예민하고, 살만한데.
"식당 테이블에서 그는 항상 그 귀걸이를 발견하곤 했다. 사과 같은 기분이겠지."
나는 오늘 이 문장이 왜 그렇게 부끄럽고 웃겼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밥 먹다 생긴 수많은 냅프킨들은 하루종일 귀와 테이블 사이를 왔다갔다. 재치있는 초딩 덕분에 좀 웃는다.
기록.
그녀는 가끔 평소 사람이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행동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린 어떤 기묘하고도 치사한 행동들을 할 때가 있다. 그리하여 그녀는 현재 도망중이며 아무도 자신의 모든 과오를 기억해내지 않을 그 날까지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겠다고 한다. 앞으로 눈에 띄는대로 그녀를 관찰하여 여기에다 기록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찾는 모든 이들에게 그녀는 단지 숨고 싶었을 뿐이며 자신은 아무데나 가서도 잘 살 수 있으니 제발 걱정하지 말고 그녀의 존재를 잊어달라고 전했다.
저 놓치시면 되게 후회할 거예요, 선생님. 이라고 모레 만나면 말해 주려고.
결혼, 하신단다. 드디어. 다음주에. 되게 쉽게 말씀하시는데 괜히 눈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사람에게는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고도 굉장히 미묘한 감정들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고는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저, 미안하다 고 한다. 미워하는데 사랑하는 것도 같을 때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반했는데 좋아할 수 없을 때 도무지 어떻게 해야할지. 어쨌든 그런 것들과는 상관없이, 행복하게 사시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마다 그날이 떠오른다. 매일같이 듣는 벨소리가 너무 끔찍해서 휴대폰을 집어 던진다. 계속 전화가 온다. 수신 차단을 해 놓고 방문을 잠그고 숨을 참는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런 악몽에 시달린다. 방금 전 내게 잘못 걸려왔던 그 사소한 전화들 덕분에 나는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추락한다. 그날, 나는 존경하던 사람을 잃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곧장 친구에게 달려갔다. 다음날 세상은 시치미를 떼며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쳤다. 평상시처럼 걷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무언가 미세하게 다른 크리스마스라는 걸 눈치 챈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날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워서 나는 점점 말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고 네가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난 네가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하고 싶다. 그래서 난 오늘도 너보다 두 배 더 연습한다.
한성대에 놀러갔다가 내리막 길에서 명품극단 연습실이 보이길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들어가 있어, 너 모르는 애들밖에 없어, 자기소개하고 커피달라고 해. 그래서 나는 커피를 제외한 모든 미션들을 충실하게 해낸 뒤, 꿔다 논 보릿자루마냥 연습실 한 켠에 짜져 있었다. 곧 쑥스러운 나는 추레한 반바지의 선생님을 뵙고 새로운 작품 연습을 관람했다. 가끔 선생님께서 멘트를 바라실 때가 있는데 어제도 그랬다. 어떻디. 좋아요. 뭐가. 무대가. 배우 빼고는 다 좋다는 거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난감했다. 그러나 역시 이번 작품도 훌륭하다. 처음 선생님을 만났을 때, 나는 그가 배우를 도구로 생각한다고 느꼈으나 이젠 그 느낌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았다. 그는 배우의 에너지와 밀도를 최대한으로 끌어내 보여주려고 하는 '연출님'이었다. 아, 진짜, 너무 좋다. 은근히 이제 그만 가라는 선생님의 어설픈 제스츄어에 집으로 돌아왔다. 자극 충전!
발레 레슨을 다시 시작했다. 연습실 구경하다가 째즈도 신나 보이길래 같이 끊어버렸다. 입시반 애들이 많아서 그런지 나까지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사실 무용원 창작과에 가고 싶다며) 입시때만큼 피터지게 연습해본적이 없었는데, 오늘부턴 말랑말랑한 고딩들 따라 입시생 흉내를 내볼까 한다. 신난다!
내일부터 다시 바삐 움직여야 한다. 희곡 완성, 새롭게 쓸 소설 구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씬 연습 스케줄, 블랑시 분석, 그리고 미치역할의 후배님과 친해지기.
이루자, 원하는 모든걸!
하루에 영화 한 편. 딱히 알바도 하지 않는, 그리 고급인력이 아닌 나로서는 방학이 싫다. 남아 도는 시간을 데이트에 쏟고 싶으나 그 분은 매우 바쁘시기에 차라리 영화를 보기로 했다. 게다가 어저께 알라딘에서 배달 된 책들이 박스채로 식탁위에 놓여 있다. 프랭클린 플래너가 권장하지 않는 행위 중 하나가 영화감상이다. 스케줄의 혁신을 가져오신 프랭클린님께선 영화감상을 시간낭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로 구분하신다. 그런데 나는 우선순위의 일로 영화감상을 한다. 다이어리를 잠시 노려 본다. 하지도 않을거면서 괜히 알바몬을 뒤져보다가 오전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동네 알바 몇 군데에다가 지원을 하고, 다음엔 또 어디에다 시간을 낭비할까 고민하다가 차라리 글을 쓰기로 했다.
목요일에 문지에서 소설 수업을 듣는다. 그저 어머니 책꽂이의 책만 탐닉했지, 진지하게 문학공부를 해본적이 없다. 그래서 극작을 하려고 결심하자 뒷심이 후달렸다. 나의 극작 스승은 지난 3학기동안 나를 깨부쉈다. 그래서 방학 때 소설쓰기와 고전읽기로 산산조각 난 내 몸뚱아리를 다시 빚으려 한다. 다른 스승을 두는 게 죄송해서 말씀은 못 드렸다. 새 스승은 섹시한 남자 작가이길 바랬으나 배나온 시골청년 작가였다. 그러나 그의 재치는 아직도 내 귓가에 맴돈다. 그가 들려준 복상사에 관한 소설과 카버의 소설때문에 웃겨서 잠이 오지 않을 정도다. 수업이 마치는 8월 말경에는 작품을 하나씩 내야 한다. 예전에 썼던 걸 재구성해서 낼까, 다른 주제를 다시 만들어볼까 고민중이다. 그러나 역시 '복상사' 정도의 포스가 등장해줘야 재미있지 않을까. 그래서 골때리는 주제를 다시 만들어보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
어제는 아임 낫 데어를 보았다. 중앙씨네마는 마치 영화의 유령이 살 것 같은 극장이다. 90년대 초반의 시간대에 멈춰진 것 같은 곳이다. 북카페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영화관에 입장했다. 친구가 촛불집회에 꼭 나오라고 했었는데 치사하고 겁 많은 나는 맞을까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이 시간대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나와 같은 겁쟁이로 느껴졌다. 농담이고, 영화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박수까지 쳐가며 동조했던 것은, 그냥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한 나'라고나 할까. 내가 누구인지 대체 누가 규정짓는단 말인가. 나는 누구의 기억속에 있고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가. 또 나는 얼마나 왜곡되어져 있는가. 그런데 진짜 내가 왜곡되어진 것인가, 당신이 왜곡된 것인가. 나를 이야기하는 화제에 정작 나는, 없다.
쥬드로 등장하는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배우로서 정말 경악하고 존경할만 했다. 그저께 술자리에서 1학년들이랑 얘기하다가, 나는 눈에 띄지 않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었다. 평소에 나는 배우다, 라고 으스대기 보단 무대위에서 변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평소의 나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무대위에서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보여지길 바랬다. 케이트 블랑쳇은 자신을 제로에다 두고 다시 칠을 할 줄 아는 무시무시한 배우였다. 좌석에서 일어나면서 씨발, 거렸다. 그리고 빗길을 걸었다.
내 심장이라도 꺼내어 내 긴 긴 혈관이라도 꺼내어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생생히 뛰고 있는 모습을 내가 눈만 뜬 시체가 아니라는 진실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믿어주세요. 치기나 자기연민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끗한 진실과 까발려진 참혹함을 바라볼 줄 안다고 당신께 듣고 싶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살 필요가 없겠죠.
유치해지고 치사해지고 싶다. 하정우는 어째서 그런 연기가 나오는 거지. 개새끼다.....
그냥 친구랑 쇼핑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생전 처음 보는 애랑 말을 섞다보면 생각도 못할 만큼 약을 삼키다 보면 괜찮아 질 거야. 어차피 니가 사랑하는 만큼 청춘이 달갑게 품에 안겨주지는 않을 테니 그냥. 상처받지를 마 병신아
귀환을 거부하는 단어들
나에게 선뜻 말문이 막힌다는 의미는 언제나 내 머릿속에는 많은 단어들과 문장들이 떠돌아다니지만 그것을 내뱉으려고 하는 찰나, 단어가 잡아야할 대상을 붙잡지 못해서 발음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나는 그것을 글을 쓸 때와 사랑에 빠졌을 때 가장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단어는 펜 끝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연인의 마음속에서 진심을 찾지 못한다. 내가 가진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르고 고르지만, 대상을 붙잡지 못해 발음하지 못한 단어들이 몸속에서 얼어붙고 만다. 내 몸은 마치 단어들로 이루어진 화석 같다. 언제나 나의 눈과 입은 단어를 기다리며 허공을 향해있지만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또 단어들이 홍수처럼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오르가즘이면서 동시에 허탈함이다. 발음하게 되는 찰나, 단어들은 싫증 잘 내는 나에게서 버려지고 남의 것이 되고 만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그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이렇게도 애를 쓰는 것일까. 어쩌면 사람들은 평생 단어를 기억해내기 위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사랑합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어서 가만히 묵주만 들고서 눈물을 삼킵니다. 나는 한번도 당신을 위해 기도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서툴게도 당신을 위해, 이제서야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큰 고통 없이 데려가 주세요, 아버지.
춥고 비오는 날 당신은 더욱 아름답지 당신은 한번도 태어나지 않은 그 신선함 그 아름다움 외엔 아무 것도 나를 구할 수 없지 나는 그 웅장함 속에서 길을 잃네
Jelaluddin Rumi, 12C, 수피(sufi)
(아름다워서, 친구의 미니홈피에서 훔쳐왔다)
미친주인이 월세를 올린다며 밤 12시에 전화와서 지랄하길래 나와 동거인은 치킨을 씹으며 우리 집은 과연 전세 칠천의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토론를 나누었다. 결국 우리는 잠실에서 쫓겨나 강북삶을 살아야하는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강북이 싫은게 아니라 이런식으로 쫓겨날수도 있다는게 참 신기했다. 이건 정말 TV뉴스에서만 보던 광경이었는데 주인은 전세 1000만원을 더 내 놓던지 아니면 4월 1일까지 집을 비워달라고 말했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 나는 애인님 앞에서 깽판을 치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잠자코 누워있는 상태였고, 동거인은 예비 시아버님께서 내일 제주도에서 올라오신다는 사실을 애인님이 퇴근 전에 알려줘서 급히 블라우스를 사서 씩씩거리며 돌아온 상태였는데 어느새 동거인은 인터넷 부동산을 뒤지면서 그래! 뭐니뭐니해도 강북이 최고야! 라고 말하며 위안삼고 있었고, 나는 치킨한마리에 소스가 달랑하나 온 것을 그릇에 옮겨담으며 참 각박한 세상이로구나! 라며 엉뚱한데다 절규하고 있었다.
내 문장이 쓰레기인지 회생 가능성이라도 있는지 가늠하는 방법.
1. 문장들을 쓴다. 2. 모니터에서 1m가량 떨어진다. 3. 전체 구조를 본다. 4. 직사각형의 문장 덩어리에서 빈틈을 발견한다. 4-1. 혹은, 직사각형 문장 덩어리 자체의 모양이 안 예뻐서 찌그러져 보인다. 5. 문장 배열을 바꾸어 본다.
이러고도 안되면 삭제.
무의식중에 스크롤을 내리다가 4-1번처럼 문장 덩어리 모양이 안 예뻐보일 때, 그게 사실은 십중팔구 마음에 안드는 글이라서 그렇다. 그 순간 키보드에서 손을 슬며시 떼면서 고개를 뒤로 젖혀 고양이처럼 모니터를 홀겨보는 버릇이 있다는 걸 오늘 발견했다.
|
|

어서와. 기다리고 있었어.
by delicately
timeline
카테고리
전체 dear lovely delicately model 욕심많은 아가씨
hub
책, 잡지, 귀고리, 흰 베개, 해지는 오후, 엎드려 있기, 그리고 혼자 SPACE MONKEY
라이프로그
 사랑의 단상
 달의 궁전
 유리동물원
 밤과 낮
 고양이를 부탁해
 아임 낫 데어
 4인용 식탁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피나 바우쉬
 2046
 엘리자베스타운
 소설
 햄릿
 죄와 벌 - 상
 대성당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어떤 미소
 슬픔이여 안녕
태그
|